한강이 희뿌연 아침 안개 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한바이오 본사 40층 회의실의 전면 유리창은 그 흐르는 강물을 무표정하게 비추었다. 에어컨이 과도하게 돌아 공기가 살갗을 베는 듯 차가웠다. 무균실처럼 멸균된 공간. 크롬 프레임 테이블, 하얀 대리석 벽, 그리고 바닥에 깔린 짙은 회색 카펫이 발소리를 완전히 삼켰다. 한도윤은 검은 정장 차림으로 창가에 서 있었다. 손끝에서 금속성 쓴맛이 올라왔다. 아드레날린. 스트레스가 혀에 닿는 그 특유의 맛.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아직도 어젯밤 압구정 클럽의 열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강시현의 입술. 비틀린 셔츠 칼라. 스모크드 글라스에 밀린 몸. 그 기억만으로도 속이 다시 타올랐다.
문이 열렸다. 한 가문의 총수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 끝에 앉았다. 두 명의 법률 자문과 홍보 이사가 뒤를 따랐다. 서류 뭉치가 탁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놓였다. 무거운 종이다. 한도윤은 그 소리를 들었다. 만년필 뚜껑을 여는 작은 금속성 클릭. 그리고 종이 위를 스치는 펜촉의 부드러운 긁히는 소리. 샤아악.
“앉아라, 도윤아.” 아버지의 목소리는 차갑고 평평했다. “어제 밤의 스캔들은 가문의 수치다. 주가가 이미 12퍼센트 떨어졌다. 강디벨롭먼트 쪽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먼저 칼을 빼야 한다. 네가 직접 성명서를 작성해라. 강시현과 그의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릴 내용으로. 동시에, 그 말도 안 되는 사적 계약 소문—결혼이니 뭐니 하는—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무효화한다. 한 글자도 남기지 마라.”
한도윤은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차갑게 등을 찔렀다. 서류가 앞으로 밀려왔다. 초안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강시현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의 가문이 청담 재개발에서 저지른 강제 수용, 매수, 부실 공사 은폐를 낱낱이 폭로하는 문장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떠도는 ‘사적 합의’나 ‘비공식 계약’ 따위의 루머를 완전히 날조된 것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부분. 한도윤의 엄지가 서명란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종이의 거친 질감이 지문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강시현의 목덜미가 재생되고 있었다. 맥박이 뛰는 자리. 클럽에서 자신이 움켜쥐었던 그 셔츠 칼라. 입술이 맞닿았을 때의 뜨거움. 분노와 욕망이 뒤섞인 낮은 신음.
“충성 테스트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서로를 파멸시키라는 명령은 이미 내렸다. 네가 주저하면 가문은 너를 버린다. 한바이오는 네 것이 아니게 된다. 지금 당장 써라. 그리고 서명해라.”
한도윤은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무게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펜촉이 종이에 닿는 순간, 부드러운 긁힘 소리가 다시 울렸다. 샤아아악. 그는 문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강시현을 직접 겨누는 부분을 살짝 늦추고, ‘확인되지 않은 정황’이라는 표현을 끼워 넣었다. ‘즉각적인 법적 조치’를 ‘추가 조사 후 검토’로 바꿨다. 사적 계약 소문을 부인하는 문장에서는 ‘현재로서는 어떠한 법적 효력도 없다’는 식으로 여지를 남겼다. 완전히 닫지 않은 문. 탈출구.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금속성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그는 창밖을 힐끗 보았다. 한강 너머, 강남 쪽 고층 빌딩들. 그중에 강디벨롭먼트 타워가 있을 것이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은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다. 입으로는 충성스러운 대답을 내뱉으면서.
“알겠습니다, 아버지. 가문의 이익이 최우선입니다. 강시현과 그 가문을 공개적으로 끝장내겠습니다. 그 어떤 사적 감정도, 루머도 남지 않게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나왔으나, 엄지는 여전히 서명란을 맴돌았다. 서명하지 않은 채. 클럽의 입맞춤이 다시 떠올랐다. 서로의 목을 겨눈 칼이면서도, 그 칼날이 살에 닿는 순간 전율이 일었던 그 감각. 주민을 위험에 빠뜨릴 비리를 은폐하라는 압력과, 서로를 파멸시키라는 테스트 사이에서, 그는 강시현을 숨 쉬게 두고 싶었다. 공개적으로는 부수고, 사적으로는 지키려는 모순. 그 모순이 심장을 옥죄었다.
같은 시각, 강디벨롭먼트 본가의 전통 회의실에는 무거운 백단 향이 가득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낮게 깔려 공기 중에 가라앉아 있었다. 나무 격자 창문, 검은 옻칠 테이블, 두꺼운 한지 병풍. 현대식 유리 벽이 한쪽에 있어 바깥 스카이라인을 보여주었다. 강시현은 창가에 서서 그 스카이라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바이오 타워가 보일 듯한 방향. 그는 마치 그 40층 회의실을 투시하듯 바라보았다. 한도윤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입술을 깨물고 있을지, 아니면 그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
아버지가 들어왔다. 강 가문의 총수. 향 냄새가 그의 옷깃에 배어 있었다. “시현아. 앉아라.”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어제의 그 영상. 주주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 한바이오를 완전히 박살 내야 한다. 네가 직접 성명서를 써. 한도윤과 그의 가문이 저지른 10년 전 내부 거래, 해외 페이퍼 컴퍼니 자금, 주민을 위험에 빠뜨린 부실 시공 은폐를 전부 까발려. 그리고 그 터무니없는 사적 계약 소문—결혼이니 합의니 하는—을 즉시 부인하고 무효로 만들어라. 한 글자의 여지도 남기지 마.”
강시현은 자리에 앉았다. 나무 의자가 딱딱했다. 서류가 놓였다. 무거운 종이에 이미 초안이 찍혀 있었다. 만년필이 건네졌다. 뚜껑을 여는 소리. 그리고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부드러운 긁힘. 샤아악. 그는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한도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 문장들. 가문의 비리를 폭로하는 칼날. 사적 루머를 완전히 날조로 규정하는 부분. 강시현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스카이라인. 한도윤의 사무실이 있을 방향. 그의 몸이 미세하게 그쪽으로 기울었다. 입으로는 충성을 말하면서.
“알겠습니다, 아버지. 가문의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한도윤을 공개적으로 끝장내고, 그 어떤 사적 소문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충성 테스트에 응하겠습니다.”
그러나 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문장을 고쳤다. ‘확정된 비리’를 ‘의혹이 제기된 사항’으로. ‘즉각 고발’을 ‘내부 검토 후 대응’으로. 사적 계약 소문을 부인하는 부분에서는 ‘현재 유효한 어떠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탈출구. 여지. 손가락이 떨렸다. 입안에 금속성 아드레날린 맛이 퍼졌다. 백단 향이 코를 찔렀다. 무겁고, 달콤하고, 질식할 듯한. 그는 한도윤의 입술을 떠올렸다. 클럽에서 맞닿았던 그 순간. 서로를 삼키려는 듯한 입맞춤. 손이 셔츠 칼라를 움켜쥐었을 때의 열기. 분노와 갈망이 뒤엉킨 숨결. 공개적으로는 그를 부숴야 했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그가 숨 쉬기를 바랐다. 주민을 위험에 빠뜨릴 비리 은폐와 가문의 파멸 명령 사이에서, 강시현은 한도윤을 지키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바이오 40층. 한도윤은 여전히 서명란을 응시하고 있었다. 에어컨의 한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멸균된 공간의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웠다. 그는 다시 펜을 움직였다. 문장을 한 번 더 다듬었다. ‘강시현 개인의 직접 개입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구절을 슬쩍 넣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왜 망설이느냐. 빨리 끝내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 법적 허점이 생기면 역공당할 수 있습니다. 가문을 더 철저히 보호하려면 문장을 다듬어야 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엄지는 종이 가장자리를 반복해서 쓸고 있었다. 클럽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강시현의 낮은 목소리. “진짜 대화는 오늘 밤.” 그 밤이 결국 스캔들로 폭발했고, 지금은 가문의 시험대 위에 올랐다. 서로를 파멸시키라는 명령. 그러나 한도윤의 심장은 강시현이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공개 성명서로 그를 죽이고, 비밀스러운 여지로 그를 살리는 이중 게임. 그 게임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창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한강이 흐르고, 그 너머 강남 타워들이 빛나고 있었다. 입으로는 계속 말했다. “강시현은 제거해야 할 변수입니다. 가문의 충성을 증명하겠습니다.”
강디벨롭먼트 회의실. 강시현도 같은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백단 향이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는 펜을 멈추고 창밖을 다시 보았다. 스카이라인. 한도윤이 있는 방향. “한바이오의 불투명한 자금이 주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하겠습니다, 아버지. 동시에 사적 루머는 완전히 차단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장은 이미 수정되어 있었다. ‘한도윤 개인의 직접 지시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표현. 완전히 목을 조이지 않는 문장. 그는 종이 위를 쓸었다. 샤아악. 부드러운 긁힘 소리. 손끝의 떨림. 금속성 맛. 그는 한도윤의 손을 떠올렸다. 클럽에서 자신의 칼라를 움켜쥐었던 그 손. 유리벽에 닿아 떨리던 손가락. 서로를 파멸시키라는 명령 아래에서도, 그 손이 자신을 끌어당기던 힘. 강시현의 몸이 창쪽으로 기울었다. 마치 그 방향으로 한도윤이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문의 이익을 위해, 한도윤을 끝장내겠습니다.”
두 회의실에서 동시에, 시간이 늘어졌다. 한도윤은 성명서 초안을 세 번 고쳤다. 매번 탈출구를 남겼다. 강시현도 마찬가지였다. 공개적으로는 서로를 물어뜯는 칼날을 갈면서, 사적으로는 그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주민을 위험에 빠뜨릴 비리를 폭로하라는 명령과, 서로를 지키려는 집착 사이의 딜레마. 적대적 계약. 욕망의 계약. 한도윤의 입술이 달싹였다. 강시현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강시현도 마찬가지였다. 한도윤. 한도윤. 그 이름이 혀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마침내 아버지들이 재촉했다. “서명해라.” “지금 당장.”
한도윤은 펜을 들었다. 그러나 서명란 바로 위에서 멈췄다. “최종 법적 검토를 한 번 더 받게 하겠습니다. 가문을 완벽히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서류를 접어 서류 가방에 넣었다. 서명하지 않은 채. 지연. 여지.
강시현도 같은 말을 했다. “홍보팀과 법률팀의 교차 검토가 필요합니다. 한 글자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최종본을 올리겠습니다.” 그 역시 서명하지 않았다.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창밖을 한 번 더 보았다. 스카이라인. 한도윤.
회의가 끝났다. 한바이오 40층에서 한도윤이 나왔을 때, 복도의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 낯선 번호들의 부재중 전화가 가득했다. 그리고 비서의 긴급 메시지. “도윤 씨, 본가 쪽 사람들이 당신 주변을 미행하고 있습니다. 사설 탐정으로 보입니다. 강디벨롭먼트 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동시에, 강디벨롭먼트 본가를 나선 강시현의 휴대전화에도 같은 종류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시현 씨, 가문에서 사설 조사원을 붙였습니다. 당신과 한도윤 씨 양쪽 모두. 움직임이 감시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건물 로비에 서서, 동시에 그 사실을 확인했다. 한도윤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미끄러졌다. 금속성 맛이 다시 입안을 채웠다. 그는 강시현의 번호를 눌렀다. 직접 통화는 위험했다. 대신, 짧은 코드를 입력했다. 예전 프로젝트 때 쓰던, 오직 둘만 아는 암호. “청담 3번 구역. 자정. 비 오는 날의 그 문.”
강시현의 화면에 그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로비의 기둥 뒤에 서서 그 문자를 읽었다. 백단 향이 옷에 아직 배어 있었다.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였다. 대답 코드를 보냈다. “확인. 칼은 아직 뽑혀 있다. 그러나 칼집은 같다.”
한도윤은 그 답을 보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가문의 시험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설 탐정들. 감시. 서로를 파멸시키라는 명령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 칼날 아래에서, 그들은 다시 만나기로 했다. 비밀 회동. 탈출구를 남긴 성명서들. 공개적으로는 서로를 죽이면서, 사적으로는 서로를 숨 쉬게 두려는 집착. 한강이 흐르고, 압구정의 밤이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한도윤은 코트 깃을 세우며 건물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강시현도 같은 순간, 본가의 문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비가 올 기미. 두 사람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서로를 향해 뻗어 있었다. 청담의 칼날은 이제 그들의 목에 동시에 닿아 있었고, 그 칼날은 이미 서로의 살 속에서 뜨겁게 맥박치고 있었다.